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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 작가의 ‘대한민국 면식기행’]
한국화 된 만두 문화 - 서울의 만둣국

등록일
03.09
조회수
301

  희고 부드러운 피에 고기와 지방 야채가 골고루 들어있는 만두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국인은 국물의 민족 답게 만두를 만둣국으로도 즐겨 먹고, 또한 햅쌀을 주식으로 하는 탓에 가래떡을 넣은 떡만둣국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먹는다. 만둣국은 중국식 만둣국인 혼돈(餛飩)이 먼저다. 조선을 지배한 주자의 성리학 때문에 중국의 만둣국이 떡국과 함께 설음식이 됐다. 조선 후기 문신 유척기(兪拓基·1691~1767)의 『지수재집』(知守齋集)에 나오는 ‘떡국과 만두를 만들어 새해를 센다’(湯餠饅頭作歲更)는 대목 등 떡국과 만둣국은 조선 중기 이후 설날의 시식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19세기 중반에 쓰인 《군학회등(群學會騰)》에는 중국식 만둣국인 혼돈(餛飩)이 나오는데 한글로 ‘만두떡’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떡국과 마찬가지로 만둣국은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음식이었다. 복만두는 조그맣게 빚은 새끼 만두를 보통 크기의 만두 속에 3~4개씩 넣어 만든다. 정월 초하룻날 만둣국 속에 복만두 한 개를 넣고 국을 끓이는데 이 복만두를 먹는 사람은 그해에 남보다 복을 많이 받는다고 하였다. 한편 정월원일(정월 초하루)에 황해도․평안도 지역에서는 세찬으로 떡국 대신 만둣국을 쓰는 것이 특징인데, 만둣국에는 돼지고기, 꿩고기, 김치 등을 넣고 송편 모양으로 네 귀가 나게 빚은 섬만두를 넣어 먹었다. 그 뜻은 일 년 농사가 잘되라고 기원하는 뜻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떡과 만두를 한 그릇에 먹는 떡만둣국을 추정할 수 있지만 기록은 20세기에 들어서서 나타난다. 1938년 2월 1일자 잡지 ‘여성’에는 ‘정초 음식으로는 별미로 만둣국이 손꼽히는데 국수장국에 만두를 넣든지 떡국에 만두를 넣든지 해서 손님을 대접하는’ 음식이라고 나온다. 내방가사 연구가 조애영이 1973년에 쓴 ‘조상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라는 기사(경향신문 1973년 2월 19일)에서 어린 시절 먹던 설 만둣국을 소개하면서 (만두를) ‘떡국과 반반씩 섞어 끓여 수백 명 손님을 먹도록 하는 것을 보았다’고 적고 있다. 떡만둣국이 대중화되는 것은 혼분식 장려운동 기간인 1960년대 이후다. 혼분식장려운동이 시작되면서 한식당의 대명사였던 한일관에서는 쌀밥을 못 팔게 되자 냉면, 온면, 만둣국만을 점심 때 팔았다. 1973년 설을 전후해 정부는 설에 쌀로 만든 떡국 대신에 밀가루로 만든 만둣국을 먹을 것을 대대적으로 권장, 홍보한다.

  1976년 수원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 지도자들과 함께 떡만둣국을 점심으로 먹었다. 부족한 쌀 때문에 생긴 정권의 핵심 과제였던 ‘혼분식 장려 운동’을 위한 것이었다.


<사진 1. 황생가칼국수의 만두(왼쪽)와 만둣국(오른쪽)>

<사진 1. 황생가칼국수의 만두(왼쪽)와 만둣국(오른쪽)>


  ‘구정(설날)상 차리기에는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만두를 빚고 가래떡(정부혼합곡으로 떡을 해도 쫄깃쫄깃하고 맛있다)으로 떡을 만들어 떡만둣국을 만들어 먹으라’(매일경제신문 1976년 1월 28일)고 나온다. 중국인의 만두가 돼지고기를 소로 사용한 것과 달리 한국인은 김치나 두부, 숙주나물 등을 넣었다. 서울 시내에는 만둣국 명가가 많다. 북촌에는 황생가칼국수가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십 년 전 ‘북촌’에 대한 고유 상표권이 인정되면서 그 이름으로 장사하던 식당들이 간판을 바꿔 달면서 ‘북촌칼국수’도 이때 ‘황생가칼국수’로 이름을 바꿨다. 식당 이름에 칼국수가 들어가지만 이 집은 만두가 더 유명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직원 서너 명이 만두 빚기에 여념이 없다. 만둣국을 시키면 커다란 만두 다섯 점이 그릇에 풍성히 담겨 나온다. 양지 설렁탕 수육과 같은 색, 투명도를 가진 육수는 감칠맛이 강하고 천연의 단맛이 난다. 돼지고기, 두부, 배추, 당면이 들어간 만두 소도 은근히 단맛이 돌고, 잘 숙성된 피는 그윽하면서도 은근한 감칠맛을 뿜는다. 흠잡을 게 없는 세련된 만둣국이다. 황생가칼국수에서 걸어서 10분정도 대법원 쪽으로 걸어가면 코로나19시대에도 영업전부터 줄을 서는 깡통만두가 있다. 1988년에 영업을 시작한 이 집의 만둣국 차림은 반가의 상차림처럼 우아하고 품위있다. 겨울에만 파는 김치만두 2점 일반만두 2점 새우만두 한점이 정갈한 놋그릇에 담겨 나온다. 국물은 황생가칼국수의 만둣국보다 간이 약하지만 숙주, 호박, 두부, 쪽파 같은 한국화된 만두 소와 돼지고기 지방의 기름진 맛이 잘 어울린다. 만둣국 맛의 반은 겉절이 김치가 결정한다. 기름진 만두와 국의 맛을 겉절이가 ‘쓱’ 날려준다.


<사진 2. 깡통만두의 정갈한 만둣국>

<사진 2. 깡통만두의 정갈한 만둣국>


서울의 만둣국 식당들은 대개 이북 실향민들의 영향이 크게 남아있다. 여의도의 '산하'는 황해도식 떡만둣국으로 유명하다. 평안도만두보다 만두의 크기가 1/5정도 작은 만두지만 피와 속이 알차다. 서울식 양지국물과 서로의 존재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생한다. 10,000원이 넘는 가격에도 고개가 끄덕일 정도다. 강남 만둣국을 대표하는 압구정의 뉴만두집은 미슐랭 가이드 빕구르망에 소개되면서 인기가 더 높아졌다. 평안도의 커다란 만두를 대표하는 식당이다. 목동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개성집이 있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눈이 내리는 추운 날에도 혼자서 만둣국을 드시고 가신다. 종업원들은 어머니 대하듯 손님을 맞는다. 만둣국은 주인이 바뀌었어도 변함이 없다. 국물은 깊고 만두는 맛있다. 소로 호박, 부추, 표고가 돼지고기와 잘 어울리는데 소를 미리 지단처럼 둥글게 넣은 것도 음식을 대하는 속 깊은 자세가 드러난다. 이 집을 유명하게 만든 표고 버섯이 돼지고기와 만나 감칠맛을 증폭시킨다. 익반죽한 피는 부드럽고 주름이 많고 두툼해 중국식 만두와는 다른 한국화 된 만두의 전형을 보여준다. 마지막 남은 만두 하나를 국물에 터뜨려 먹는다. 밥을 말아먹는 사람도 있다. 만두와 국과 김치가 곁들여진 만둣국 한국인의 밥상은 언제나 풍성하다.


<사진 3. 개성집의 만둣국>

<사진 3. 개성집의 만둣국>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   - 푸디즈 대표, 도서출판 미컴 대표, 인디컴 경영 기획실장, 다큐 서울 방송 프로듀서  - 조선일보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중앙일보 <박정배의 시사음식> 등 연재  - KBS1 <밥상의 전설>, SBS Plus <중화대반점> , MBC 라디오 <건강한 아침>  등  출연  - 주요 저서:  <음식강산1, 2,3>,  <한식의 탄생>,  <푸드 인더 시티>,  <3000원으로 외식 즐기기>, <일본 겨울 여행>, <500엔으로 즐기는 맛있는 도쿄>, <사케입문> 등 다수  - 한국, 북한, 일본, 중국 등 동북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기원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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