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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박정배 작가의 대한민국 면식기행] 강원도 장칼국수 기행

등록일
01.19
조회수
361

1960년대 혼분식장려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밀가루를 이용한 국수 문화가 서민들의 일상식으로 자리잡는다. 밀로 만든 국수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먹어 온 음식은 칼국수였다. 가을 추수 후 휴경지에 보리나 밀을 심고 6, 7월에 추수한 밀은 쌀이 떨어진 시기에 먹던 구원의 작물이었다. 밀을 갈아 반죽해 홍두깨로 땀이 베일 정도로 밀어 칼로 쓱쓱 썰어내 국물에 넣으면 칼국수 한 그릇이 완성된다. 혼분식장려운동 이후 칼국수 외식 문화는 전국에 고루 뿌리를 내렸다. 강원도 하면 막국수를 떠올리지만 장(醬)을 이용한 장칼국수 문화도 다채롭게 꽃 피우고 있다. 

칼국수란 한글 단어는 1677년에 쓰여진 중국어 학습서인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 중국말 경대면(經帶麵)과 함께 나온다. 경대면의 경대는 관리들의 큰 허리띠를 말하는데 칼국수의 모양과 비슷해서 붙여진 말이다. 칼국수는 써는 면이라는 이름 그대로 도면(刀麵) 혹은 절면(切麪)이 쓰였다. <박통사 언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 요리책인 <음식디미방>(1670년경)에는 칼국수란 단어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칼로 썰어 먹는 면들인 녹두로 만드는 국수인 착면법과 밀가루와 계란으로 만드는 난면법, 밀가루로 만드는 별착면법이 나온다. 

밀은 가정에서 가루를 만들어 반죽하기에 무척 까다로워서 '여자의 땀국'(1973년 2월 19일 경향신문)으로 부를 정도로 여름에나 먹던 별식이었다. 하지만 6.25 전쟁을 거치면서 밀가루가 흔해지고 1960년대 중반이후 분식 장려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각 가정에서 밀가루로 만들어 먹는 음식의 형태는 칼국수가 41%로 그 비중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수제비로 24%, 빵 18%, 부침개 17%로 밝혀졌다(1972년 7월 12일 매일경제)’. 이처럼 칼국수는 집에서는 물론 짜장면, 짬뽕, 우동과 같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탓에 한국형 분식의 선두주자로 자리잡게 된다.

따스한 장국에 부드러운 면발은 겨울을 포근하게 해준다. 강원도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서쪽 해안가인 영동과 내륙 영서로 크게 나뉜다.

속초와 강릉 동해 일대에는 멸치육수를 기본으로 고추장과 된장이나 고추장과 막장을 섞어 만든 국물을 기본으로 한다. 가게에 따라 홍게·조개·오징어·새우 등 다양한 해산물을 넣고, 꾸미로 감자·호박·파에 김을 얹는 것이 이 지역 칼국수집들의 공통점이다. 

영서에서는 멸치육수를 기본으로 막장을 이용하는 집이 많다. 짠맛이 별로 나지 않는다. 거기에 들깨를 넣어 걸쭉하고 고소한 맛을 낸다. 


동해시의 2대 장칼국수

동해시에는 ‘대우칼국수’와 ‘오뚜기칼국수’라는 2대 장칼국수집이 있다. 대우칼국수는 1961년에 생긴 집이라는 설명이지만 영업허가증에는 1980년대 초반으로 게재되어 있다. 상가 2층 건물에 허름한 공간에 있는 소박한 식당이다. 고추장이 중심이 된 붉은 용암 같은 걸쭉한 국물이 맵고 달달하다. 으깬 감자가 “여기 강원도래요”라고 상기시키는 듯하다. 국물에 계란과 전분을 풀었다. 겨울에 속을 풀거나 채우기에 제격이다. 메뉴는 장칼국수와 장칼만두국 두개다. 만두는 장칼국수의 식당들의 성격을 규정한다. 분식의 시대에 만두와 라면, 칼국수는 한 몸처럼 팔린 메뉴였기 때문이다. 바로 옆 오뚜기 칼국수는 대우칼국수와 이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다른 점은 국물이 덜 달고 걸쭉하지 않다. 할머니 두 분이 요리를 만드시는데 김치와 당면을 넣은 교자식 만두를 만들고 있다. 김치 만두는 한국식 교자의 전형이다. 고추장 중심의 국물과 잘 어울린다.


사진 1. (왼) 동해 대우칼국수 식당 입구/(오) 동해 대우 장칼국수 />

<사진 1. 동해 대우칼국수 식당 입구(왼쪽), 동해 대우 장칼국수(오른쪽)>


<사진 2. (왼) 동해 오뚜기칼국수 메뉴판/(오) 오뚜기 장칼국수 />

<사진 2. 동해 오뚜기칼국수 메뉴판(왼쪽), 오뚜기 장칼국수(오른쪽)>


강릉의 장칼국수 3대 천왕

강릉에는 장 칼국수로 유명한 3개의 식당이 있다. ‘현대장칼국수’, ‘금학칼국수’와 ‘벌집장칼국수’다. 현대장칼국수는 코로나 시국인 요즘 오후 1시에도 손님이 많다. 메뉴는 맵기를 기준으로 장칼국수와 맑은 칼국수로 나뉘고 장칼국수도 다시 매운맛, 보통맛, 순한맛으로 나뉘는데 종업원이 “기본맛이 신라면이 보다 매운데 괜찮으세요?”라고 묻는다. 국물은 전분을 약간만 넣어 맑지만 청양 고추 때문에 칼칼하다. 국물 안에 삶은 계란 같은 감자 반쪽도 재밌다. 매운 맛을 된장이 잡아 줘 맛의 밸런스가 좋고 피니쉬가 좋다. 대중들이 좋아할 요소를 두루 갖춘 집이다. 

좁은 골목에 가정집 개조해 1984년도에 시작한 금학칼국수는 집에서 먹는 친근한 음식을 낸다. 장칼국수와 더불어 콩나물 밥도 유명하다. 걸쭉한 국물은 맵고 구수하고 다른 식당에 비해 면발이 상대적으로 단단한 게 특징이다. 

손님이 벌떼처럼 모였으면 하는 바램에서 지은 이름을 단 벌집장칼국수는 한옥 그대로를 사용한다. 실내 분위기가 그윽하다. 50년 정도된 식당이다. 장칼국수가 나오기 전에 나오는 붉고 먹음직스러운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다른 식당의 분식집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칼국수 위에 기름에 볶은 소고기 지단이 나온다. 김치나 소고기 지단이 보여주듯 식당의 기초가 다른 집이다. 면도 도톰하지만 부드러워 먹기 적당하다. 소고기를 볶은 참기름이 국물을 기름지게 물들인다. 끝 맛이 정말 좋다. 


<사진 3. (왼) 강릉 벌집장칼국수 외관/(오) 벌집장칼국수 />

<사진 3. 강릉 벌집장칼국수 외관(왼쪽), 벌집장칼국수(오른쪽)>


속초의 2대 장칼국수

속초분들은 장칼국수를 사랑하고 잘 만든다. 최근에는 명태를 넣은 명태장칼국수(시골 칼국수)같은 식당도 등장했다. 하지만 가장 인기 많은 곳은 ‘옛날수제비’와 ‘왕박골장칼국수’다. 옛날수제비는 수제비란 이름을 건 식당 답게 수제비를 잘한다. 수제비와 칼국수를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장칼제비(7천원)가 인기 메뉴다. 국물은 된장이 더 강조된 구수하고 청양고추 덕에 칼칼하지만 맑고 깊다. 얇은 수제비는 도삭면 같은 다양한 식감을 주고 보드라운 두터운 면발은 면을 씹는 즐거움을 준다. 속초 장사동의 '왕박골식당'을 가장 오래된 명가의 하나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주문을 하면 반찬으로 동치미, 배추김치. 섞박지가 먼저 나온다. 섞박지는 양양 속초의 겨울 명물이다. 장칼국수는 고추장, 된장이 들어 갔음을 분명히 상기시키는 붉고 걸쭉한 국물, 손반죽 한 티를 한껏 뽐내는 듯 구불구불 불규칙한 면발들이 고들고들하고 보기엔 붉지만 맵지 않고 구수한 국물은 명가의 이유를 웅변한다. 


<사진 4. (왼) 속초 왕박골장칼국수/(오) 속초 왕박골식당 반찬 />

<사진 4. 속초 왕박골장칼국수(왼쪽), 속초 왕박골식당 반찬(오른쪽)>


원주의 된장 장칼국수

강릉의 고추장 · 된장이 섞인 얼큰한 맛과 달리 원주로 넘어오면 된장만을 넣은 구수한 맛으로 바뀐다. 원주는 '장수 칼국수'와 '영월장칼국수' '원주 칼국수'가 유명하다. 원주 칼국수는 장칼국수와 장수제비만을 판다. 하얀 배추, 초록색 얼갈이 배추가 나온다. 장칼국수는 깔끔하고 구수한 막장을 풀어서 짠맛이 거의 나지 않는다. 들깨도 들어가 고소한 맛이 배가된다. 얼갈이 배추 몇 잎이 국물에 잠겨 있다. 원주 시민 전통 시장에는 칼국수와 만두를 섞어주는 칼만이 유명하다. 가장 오래된 집으로 알려진 '할머니 만두'를 비롯해 '원주 김치 만두', '우리 왕만두', '예진네 만두', '나래분식'등 여섯 곳이 만두와 칼국수 또는 칼만두를 팔고 있다.


<사진 5. (왼) 원주 장칼국수/(오) 원주 칼만두 />

<사진 5. 원주 장칼국수(왼쪽), 원주 칼만두(오른쪽)>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   - 푸디즈 대표, 도서출판 미컴 대표, 인디컴 경영 기획실장, 다큐 서울 방송 프로듀서  - 조선일보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 중앙일보 <박정배의 시사음식> 등 연재  - KBS1 <밥상의 전설>, SBS Plus <중화대반점> , MBC 라디오 <건강한 아침> 등  출연  - 주요 저서:  <음식강산1, 2,3>,  <한식의 탄생>,  <푸드 인더 시티>,  <3000원으로 외식 즐기기>, <일본 겨울 여행>, <500엔으로 즐기는 맛있는 도쿄>, <사케입문> 등 다수  - 한국, 북한, 일본, 중국 등 동북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기원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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