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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다오샤오멘에 추(醋)를 넣고, 요리에 맞춰 펀주(汾酒)를 마시고 - 중국 최초의 은행이 생겨난 세계문화유산 핑야오고성

등록일
08.25
조회수
437

드넓은 중국 땅에 수없이 많은 고성이 있다. 지금도 주민이 살아가는 주거공간이자 과거 역사와 현재 문화가 공존하는 모습이라 자주 찾게 된다. 4대 고성 중에 유일하게 북방에 있는 핑야오(平遥)로 찾아간다. 남방의 휘상(徽商)과 함께 양대 상방으로 유명한 진상(晋商)의 중심이기도 하다. 춘추시대 진나라 땅 산시(山西)의 성도인 타이위엔(太原)에서 서남쪽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다. 명나라 초기에 형성된 도시로 북쪽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다. 명나라 및 청나라 시대의 전형적인 현성(县城)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199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고성에는 종교 및 행정기구, 상업시설을 비롯해 볼거리가 넘쳐난다. 무엇보다 근대적인 은행이 고성을 유명하게 했다. 표호(票号)라 불리는 은행이다. 청나라 시대에 이르러 전국을 주무르던 상인 집단인 진상은 은행에 착안했다. 최초의 표호인 일승창(日升昌)을 찾는다. 일승창 주인은 염직업으로 성장한 이대전(李大全)이다. 처음 생길 때 일종의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됐다. 이대전은 은(银) 30만 양을 출자한 최대 주주였다. 

<사진 1. 일승창 편액/은행 업무 공간(위 왼쪽/오른쪽), 일승창/자원추극/주인 업무 방(아래 왼쪽부터)>

<사진 1. 일승창 편액/은행 업무 공간(위 왼쪽/오른쪽), 일승창/자원추극/주인 업무 방(아래 왼쪽부터)>


면적은 1,963m2에 이르고 방은 100여 칸이다. 바깥은 주로 은행 업무를 담당하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회의와 주거공간이다. 운송도 담당하고 호송도 해야 하니 조직이 방대했다. 상방 내 서열에 따라 기거하던 방을 차례로 살펴볼 수 있다. 자원추극(紫垣枢极)이란 편액이 걸린 방은 큰 고객과 회의를 하는 방이다. 자원과 추극은 황궁과 천자를 뜻하며 화려하고 행복하다는 뜻이 있다. 일승창을 운영하는 주인인 장구이(掌柜)가 업무를 보는 방이다. 


산시 상인이 사용한 주인이란 말인 장구이가 우리가 흔히 쓰는 ‘짱깨’가 됐다고 알려진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면서 이상하게 약간의 멸시를 담는 말이 됐다. 관광객이 던져놓고 간 돈이 떨어져 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처럼 복을 받으리라는 기대감이 만든 현상이다. 비록 푼돈이지만 다른 사람이 던지니 그냥 모른 체하기 어렵다. ‘최초의 은행’이 아니던가?

<사진 2. 울성장/광서황제(위 왼쪽/오른쪽), 무술변법 안내/울성장을 지키는 강아지(아래 왼쪽/오른쪽)>

<사진 2. 울성장/광서황제(위 왼쪽/오른쪽), 무술변법 안내/울성장을 지키는 강아지(아래 왼쪽/오른쪽)>


고성 곳곳에 표호가 많다. 울성장(蔚盛长)도 표호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듯 돈을 번다는 뜻이다. 입구에 복스럽게 생긴 강아지가 앉아 있다. 못된 사람 들어오지 말라는 듯 은근히 바라본다. 안으로 들어서니 붓을 들고 염주를 걸고 황제 풍모를 띤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청나라 말기 광서제다. 뒷면에 황제가 추진한 개혁인 무술변법(戊戌变法)에 참여했다가 사형 당한 육군자(六君子) 중 한 명인 담사동(谭嗣同)과 일본으로 도주한 양계초(梁启超), 강유위(康有为) 사진이 있다. 100일 동안 진행된 개혁은 서태후의 반대로 실패했다. 


울성장은 광서제와 인연이 깊다. 청나라 말기 부청멸양(扶淸滅洋)을 기치로 내건 의화단 운동을 토벌한다는 핑계로 1900년에 서양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침공했다. 이때 서태후와 광서제는 긴급하게 시안(西安)까지 도피한다. 서태후는 도피 중에도 씀씀이가 매우 커서 청나라 조정은 가는 지방마다 민폐를 끼쳤다. 핑야오에서는 울성장에서 묵었고 수표로 비용도 빌렸다. 그래서 광서객잔(光绪客栈)이란 별명이 붙게 됐다.

<사진 3. 골동품 가게(위 왼쪽/가운데), 추 파는 항아리(위 오른쪽), 다오샤오멘 현수막/다오샤오멘(아래 왼쪽/오른쪽)>

<사진 3. 골동품 가게(위 왼쪽/가운데), 추 파는 항아리(위 오른쪽), 다오샤오멘 현수막/다오샤오멘(아래 왼쪽/오른쪽)>


고성 거리는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옛 모습 그대로이지만 골동품과 공예품을 쌓아놓고 있다. 고관대작과 부부 초상화가 인상적이다. 사람들도 그다지 바쁘지 않다. 물건 사라는 강요도 거의 없다. 웃으면 같이 웃고 사진을 찍으면 비켜 준다. 산시를 대표하는 다오샤오멘(刀削面)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밀가루 반죽을 칼로 베어내 삶은 국수다. 넓은 면발이 쫄깃하다. 핑야오에서 만드는 발효 간장 식초인 추(醋)를 넣어서 먹으면 금상첨화다. 고성 곳곳에 추를 파는 가게가 많다.


요기를 마치고 문묘(文庙)에 간다. 과거(科举) 박물관은 핑야오 출신으로 급제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들로 꾸며져 있다. 소년 소녀가 다정하게 앉아 책을 읽는 조각상이 반갑게 맞이한다. 청나라 시대 과거와 관련된 문서나 책자, 하사품 등이 전시돼 있고 과거제도를 알기 쉽게 꾸며놓았다. 공자 사당으로 연결된다. 성신문무(圣神文武) 현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공자의 초상화가 있다. 

<사진 4. 문묘 책 읽는 아이들/구룡벽(위 왼쪽/오른쪽), 성신문무/대성전/유를 새긴 바위(아래 왼쪽부터)>

<사진 4. 문묘 책 읽는 아이들/구룡벽(위 왼쪽/오른쪽), 성신문무/대성전/유를 새긴 바위(아래 왼쪽부터)>


대성전(大成殿)에는 덕을 공경하고 도를 세운다는 덕제주재(德齐帱载)와 본받아야 할 스승이라는 만세사표(万世师表) 편액과 함께 공자와 제자들이 도열해 있다. 사당을 비롯한 건물들이 다 정갈하고 정원도 비교적 잘 가꿔져 있다. 높은 벽을 끼고 돌아 나오는 길도 휴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 바위에 유(儒) 자가 멋지게 서 있다. 바깥으로 나오니 아홉 마리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을 날아오를 듯 새겨져 있는 구룡벽(九龙壁)과 만난다. 구룡벽은 베이징 고궁 등에 세워 황제의 권위를 상징한다. 그냥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없다. 청나라 시대 황제가 서쪽 지방으로 친정을 떠나면 반드시 핑야오를 거쳐 갔다. 여러 번 황제가 찾았던 장소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진 5. 성황전/숙정과 회피(위 왼쪽/오른쪽), 재신들/재신전(아래 왼쪽/오른쪽)>

<사진 5. 성황전/숙정과 회피(위 왼쪽/오른쪽), 재신들/재신전(아래 왼쪽/오른쪽)>


문묘 옆에는 도교 사관인 성황묘(城隍庙)가 있다. 사실 민간에서 생겨난 신앙으로 성곽의 수호신을 봉공하는 장소다. 점차 도교의 범위로 들어와 도교적인 분위기와 어울린다. 성황전 앞에 향을 피우긴 해도 조용하면서 정갈하다. 안으로 들어서니 엄숙한 재판이 진행되니 조용히 하라는 숙정(肃静)과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회피(廻避) 깃발이 나타난다. 인간 세상에서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메시지다. 깃발 위에 있는 괴상하게 생긴 동물이 섬뜩하다. 도무지 죄를 짓고 살기 어려울 듯하다. 


재신들이 모여 있는 재신전(财神殿)도 있다. 착하게 살고 열심히 노력해 재물을 얻는 일이 그저 인간의 삶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중국 재물신은 기원전 상나라 시대 인물인 비간과 조공명, 삼국 시대의 관우가 대표 인물이다. 오행(五行) 방위에 맞춰 왕해와 범려까지 동서남북과 중앙에 각각 재물을 관장한다. 단목사, 이궤조, 관중, 백규를 더해 서남, 동북, 동남, 서북까지 구로재신(九路财神)의 진용이 형성돼 있고 또 약간씩 차이도 있다. 이뿐 만 아니라 더 많다. 그냥 자기 재산을 보호해주고 재물이 생기길 기원할 인물이라면 동네마다 봉공했다. 그래서 수십 명의 재물신이 있다. 중국은 그런 나라다. 

<사진 6. 명경고현/뇌옥/숙하(위 왼쪽부터), 공생명과 염생위/토지사(아래 왼쪽/오른쪽)>

<사진 6. 명경고현/뇌옥/숙하(위 왼쪽부터), 공생명과 염생위/토지사(아래 왼쪽/오른쪽)>


명청 시대의 관청인 현아(县衙)에 간다. 입구에 관리의 덕목인 공생명(公生明)과 염생위(廉生威)이 또렷하게 새겨놓았다. 관리는 공정해야 밝은 정치를 할 수 있으며 청렴을 지켜야 백성이 따른다는 의미다. 본청인 친민당(亲民堂)에 들어선다. 관리가 업무를 보거나 주민의 고충을 해결하는 장소다. 판결이 공정하다는 명경고현(明镜高悬)이 관리가 늘 살펴야 하는 말이나 주민에게도 약간의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보통 관청은 업무를 보는 장소와 감옥, 주거공간과 사당으로 이뤄져 있다. 한나라 시대 재상인 숙하(萧何)를 봉공하는 사당이 있다. 토지를 관장하는 신을 봉공하는 사당도 있다. 관아 끝에 있는 뇌옥(牢獄)으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리라.


오후가 지나면서 햇볕이 유난히 빛난다. 한 식당 유리창에 독특하게 생긴 글자가 보인다. 복잡하게 생겼다. 진상의 작품이다. 네 개의 글자가 합쳐졌고 초재진보(招财进宝)라고 읽는다. 한참 바라보면 무릎을 치며 알게 된다. 재물을 부르고 보물이 들어온다는 말이 하나로 합체하니 신기하다. 고성에는 이 글자가 무수히 많다. 요즘은 다른 지방에 가도 가끔 만난다. 식당으로 들어가 요리 몇 개를 주문한다. 버섯, 가지, 청경채 등으로 구색을 갖추고 백주를 주문한다. 바로 산시를 대표하는 펀주(汾酒)다. 중국 술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라 할 수 있다. 마오타이(茅台)와 더불어 중국 명주를 대표한다. 진상이 펀주의 주정(酒精)을 전국에 뿌렸다. 중국 술의 어머니 같은 존재다. 

<사진 7. 초재진보/요리와 펀주(위 왼쪽/오른쪽), 펀주/고성 누각 야경/고성 객잔(아래 왼쪽부터)>

<사진 7. 초재진보/요리와 펀주(위 왼쪽/오른쪽), 펀주/고성 누각 야경/고성 객잔(아래 왼쪽부터)>


핑야오고성은 가로와 세로로 가르는 길거리에 누각이 2개 있다. 고성 중심에 있는 누각에 밤이 되면 찬란하게 불을 밝힌다. 검은 곳과 붉은 곳, 그 대비가 즐거운 핑야오의 밤이다.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어두운 골목을 지나도 고성 안은 그저 편안하다. 옛집을 개조해 침실과 화장실도 깨끗한 객잔이 많다. 길옆은 식당이고 안쪽 깊이 문을 몇 개 지나가면 객방이 있는 구조다. 대부분 옛날 진상이 살던 저택이다. 홍등을 밝힌 아름다운 밤을 보내기에 너무도 낭만적인 핑야오고성이다. 





최종명 중국문화 전문가, 작가 및 강사  - 전 차이나TV 부사장, 2005년부터 중국 400여 개 도시 발품취재, 오마이뉴스 등 기고  - 한겨레 <차이나리포트>, EBS세계테마기행, 여행채널 TVIS 등 출연  - 한겨레 테마여행 동행작가 및 중국문화여행 기획인솔  - 중국역사와 문화에 관한 강의 (기업/학교/기관 등)  - 주요 저서: <꿈꾸는 여행, 차이나>(2009), <13억 인과의 대화>(2014), <민,란>(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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