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한영신 교수의 ‘아이의 기질과 식사육아’] 입이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
- 힘들지만 재능을 가진 거예요! -

등록일
02.03
조회수
354

  나는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언니, 오빠, 나 그리고 여동생. 혼자서 부인과 4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가 가족을 풍족히 먹이기 위해 가끔 사 오는 것이 족발이었다. 마장동 고기 시장에까지 가져서 족발을 사 오는 날이면 커다란 솥에서 끓는 족발 냄새가 집안에 가득해졌다. 그 순간부터 나의 괴로움이 시작됐다. 나는 고기 특유의 냄새를 싫어한다. 냄새를 싫어하니 먹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족의 족발 잔치를 함께 즐기지 못할 뿐 아니라 구박을 받는 날이었다. 다들 먹는데 혼자 못 먹으니 심술이 날 만하다. 맛있게 먹고 있는 가족 옆에서 왜 내가 못 먹는 음식을 사 와서 나를 괴롭게 하냐고 코를 틀어막고 떠들어 댔다. 내가 먹지 못해 안타까운 사람은 엄마뿐이다. 맛있게 먹는데 떠들어서 시끄럽고 음식 맛이 떨어진다고 쟤 좀 어떻게 내보내면 좋겠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었다. 참 서럽고 억울했던 나의 어릴 적 기억이다.


  내가 왜 이렇게 먹는 것에 까다롭게 굴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후각과 미각이 예민하기 때문이다. 고기 특유의 냄새를 싫어하는데 후각이 예민하다 보니 고기 냄새가 매우 강하게 느껴져 더 역겹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예민해서 생기는 문제는 고기만이 아니다. 신맛에 예민해서 딸기를 잘 먹지 못하고, 카페인에 예민해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못한다. 커피 향을 좋아해서 큰맘 먹고 한번 마시고 나면, 가슴이 뛰고, 어지럽고,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야 한다. 나의 예민함 때문에 가족이 불편하고 엄마가 좀 힘드셨겠지만 가장 힘든 것은 나였다. 나도 커피도 잘 마시고, 아무 고기나 다 잘 먹고 싶다. 고기를 먹을 때 냄새가 어떠니, 맛이 어떠니 하며 까다롭게 굴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이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나길 그렇게 생겼는데. . .


  감각이 예민해 부모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이 꽤 많다. 예민한 아이들은 ‘이 맛은 어떻다, 저 맛은 어떻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 등등 이유가 다양하다. 감각이 예민하면 강한 맛이 나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흔히 좋아하는 케첩과 같은 소스를 싫어하고, 양념치킨도 싫어한다. 우유를 싫어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잘 먹던 볶음밥을 안 먹더란다. 왜 안 먹나 했더니 버터가 어딘가에 섞여서 볶음밥에 들어갔는데 그 향을 알아내고 안 먹었다고 한다. 엄마가 먹어보니 버터향이나 맛이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약했었는데 말이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둔감한 사람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감지하기 때문에 이해받지 못하는 때가 많다. 예민한 아이들의 부모들은 먹이고 싶은 음식을 아이가 먹지 않을 때 많이 힘들어한다. 이런 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엄마가 주는 것을 먹지 못해 가장 힘든 것은 아이일 것이라고. 아이도 엄마가 주는 것 잘 먹어서 건강해지고 칭찬도 받고 싶지만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쩌겠는가. 


<표 1. 아이의 기질 요인 중 하나인 ‘감각 민감도’>  기질 : 감각 민감도 / 정의 :  반응(빛, 접촉, 맛, 냄새, 소리 등)을 일으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자극이 요구되는가를 의미 / 기질적으로 까다로운 아이 특성 : - 옷 라벨을 불편해해서 떼어주어야 함, - 쉽게 잘 놀래고 작은 소리에도 쉽게 깸, - 시도해보지 않은 맛과 질감상의 차이를 쉽게 알아차림, - 먹기 싫어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음식으로 가장해 주려고 해도 도무지 넘어가지 않음

<표 1. 아이의 기질 요인 중 하나인 ‘감각 민감도’>


  앞의 글에서 살펴본 기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사람은 자기만의 특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기질’이라고 하며, 이렇게 타고난 기질은 평생 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감각의 예민도는 타고난 기질 중의 하나이다. 미국 모넬화학감각연구소 폴 브레슬린박사팀이 쓴맛에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의 예민도를 조사해 보니 100~1,000배의 차이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같은 오이를 먹고 있지만 누군가는 적절하게 쌉쌀한 맛있는 채소지만 누군가는 너무 써서 먹지 못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림 1. 쓴 맛에 대한 예민도의 차이> 쓴맛 100~1000배 민감

<그림 1. 쓴 맛에 대한 예민도의 차이>


  새로운 음식을 안 먹는 아이에게 친근하게 여러 번 노출시켜 먹도록 하는 ‘푸드브리지’ 방법을 사용해 보라는 권유를 받아 시도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감각이 예민한 아이는 이러한 방법으로 먹는 것을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냥 ‘너는 이게 정말 싫구나’ 하고 포기하면 된다. 그 음식은 포기하고 다른 음식을 주면 되니까! 나의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싫은 것이 많았지만 좋아하는 것도 꽤 많았다. 고기 대신 계란과 두부를 아주 좋아했고, 아이들이 싫어하는 시금치를 잘 먹었다. 예민한 사람이라고 모든 음식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이 많고 의외의 식품을 좋아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아이 키우는 것이 비슷한 것 같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강요하다보니 문제가 생긴다. 건강한 식품 중에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많으니 지금부터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보자.


<그림 2. 새로운 식품의 노출 정도에 따른 아이의 식품 거부 수준>

<그림 2. 새로운 식품의 노출 정도에 따른 아이의 식품 거부 수준>


예민한 아이의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하다 보니 예민한 것이 나쁜 것이라 생각을 할 것 같다. 사실 감각이 예민한 것은 재능이다. 시댁에서 김장을 할 때면 나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 간이 잘 맞는지 맛을 봐야 해서이다. 감각이 예민하다보니 짠맛 정도, 맛의 비율 등을 잘 감지한다. 감각이 예민해야 훌륭한 바리스타가 될 수 있고, 유능한 요리사도 된다. 재능이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원래 어려운 것이다. 예민하다 힘들어하지 말고, 아이의 재능을 관찰하며 아이 키우는 재미를 느껴보자.  


 


한영신 교수  - 현) ㈜뉴트리아이 대표, 전)삼성서울병원 소아영양 전문연구원 , 전)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연구교수   - ‘식품알레르기’와 ‘아토피피부염’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 활동과 함께 방송 프로그램에 전문가로 참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안먹는 아이 잘먹는 아이>, <내아이의 전쟁 알레르기>, <알레르기의 올바른 이해> 등이 있다.




댓글창

0/ 500 byte

욕설, 상업적인 내용, 특정인이나 특정 종교 및 특정사안을 비방하는 내용 등은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전체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한마디를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