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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노봉수 교수의 ‘맛의 비밀'] 매운맛의 절정

등록일
04.21
조회수
1657

   몇 년 전 독일의 하이델베르그를 방문한 적이 있다. 조카가 그곳 근처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서 학회에 참석하였다가 격려차 들렀다. 하이델베르그 성곽과 주변을 구경하고 내려오니 제법 땀이 났다. 여름철이라 시원한 독일맥주라도 먹자고 제안을 하였더니 독특한 곳을 소개하여 우리는 독일 맥주 500 cc 씩 주문하였다. 맥주잔 밑에 받침접시에는 ‘31’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기에 아이스크림 회사가 운영하는 줄로만 알았다. 맥주가 나오자 나는 시원하게 한 번에 다 마실 양으로 마시고 있는데 2/3쯤 마셨을 때 목구멍에 불편함을 느껴 그만 잔을 내려놓으니 “어! 이 맥주 31도짜리예요!” 라고 조카가 그런다. 갑자기 취기가 확 오르기 시작하였다. 무슨 맥주가 31도나 되느냐 했더니만 “이 집 맥주 중에 가장 알코올 도수가 높은 것”이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네스북에 등재되기 위해서 독일과 영국이 알코올 농도가 높은 맥주 제품을 만드는 경쟁을 했었단다. 맥주는 발효할 때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면 맥주효모가 더 이상 자랄 수 없어서 고알코올 맥주를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누가 더 나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가 경쟁의 초점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냉동농축기술을 이용하여 무려 67.5%의 알코올 농도를 지닌 ‘스네이크 베놈(Snake Venom)’이란 맥주가 탄생하기는 하였지만 현재 판매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사진 1. 매운맛을 내는 재료들>

<사진 1. 매운맛을 내는 재료들>


   이처럼 1994년 기네스북에 레드사비나 고추(Red Savina chili)가 등재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서로 매운 맛 고추의 챔피언이 되겠다는 경쟁이 원예육종학자들 뿐만 아니라 요리사, 농부들 사이에 치열하게 펼쳐졌다. 가장 매운 요리를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서 보겠다는 꿈을 향해 전진하여 온 것이다. 레드사비나 고추는 그 당시 가장 맵다고 알려진 할라피뇨 고추보다도 대략 200배나 매운 맛을 지녔었다. 레드사비나 고추의 매운맛이 577,000 스코빌 매움 단위(SHU, Scoville heat unit)였다. 우리나라의 풋고추는 물론 재배 방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약 1,500 SHU이고 청양고추가 4,000~12,000 SHU인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매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의해 챔피언의 자리가 바뀌길 반복하다가 현재 가장 매운 맛을 내는 고추는 캐롤라이나 리퍼 페퍼(Carolina Reaper pepper)라고 알려졌다. 이 고추는 무척 매운 고추로 알려진 캡시컴 키넨세(Capsicum chinense)를 품종 개량한 것으로 크기는 주먹보다 작다. 이것의 매운 맛은 1,500,000~2,000,000 SHU로 나타났다. 현재 기네스북에 등재된 고추 중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다. 청양고추의 약 200배에 달하는 매운맛으로, 혀끝으로 살짝 맛보기만 해도 온몸이 따끔거리고 손발이 마비되는 것 같은 엄청난 고통에 직면한다. 그러한 탓에 경찰들이 분사하는 스프레이와 비슷하여 여성들의 호신용 스프레이에도 사용되기도 한다. 

   

   고추의 매운 맛은 사실 맛으로 여기기보다는 통증을 유발한다는 표현이 바람직하다. 매운 음식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고통이 따르더라도 좀 더 맵고 화끈한 음식을 찾는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도 많이 나고 입안에서 뿐만 아니라 위나 장에서도 통증이 나타나 며 심한 경우엔 설사를 하기도 하는데 왜 사람들은 그처럼 매운 것을 찾을까?

   매운 맛 성분은 혀끝의 감각기관으로 하여금 맛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모호하게 만들어 준다. 일반적으로 미각은 인간의 감정과 심리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감각의 모호함을 통하여 질서 있게 유기적으로 일어나는 우리 몸속의 대사활동을 한 번에 리셋(reset)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는 표현이 어떨까 싶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매운 맛 라면을 좋아한다고들 한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웬만큼 맵더라도 개의치 않고 더 화끈한 것을 찾아 맛의 즐거움을 느끼려 한다. 한번 빠지면 빠져 나오기가 어려운 것이 매운 맛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음식을 조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매운 식재료를 찾으려 하고 손님들에게 우리 식당을 방문하면 아주 매운 맛의 음식을 드실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하고 싶어 할 것이다. 이런 이유들이 매운 맛 고추를 개량하려고 하는 노력들과 연관된다.     


   어떻게 이런 매운 고추가 만들어졌을까? 고추는 가지과 식물로 꽤 오래 전, 그러니깐 공룡시대부터 기후변화와 동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변신을 계속하여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해 왔다. 고추를 비롯하여 담배, 커피, 헤로인이나 코카인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식물체들은 자신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자신을 해치려는 동물, 곤충, 벌레 혹은 미생물로부터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러 알칼로이드 계통의 생리활성물질을 만들어 보호하고자 하였다. 실제로 매운맛의 고추와 맵지 않은 고추의 외부로부터의 침해정도를 비교하면 매운맛의 고추가 동물은 물론 미생물로부터도 더 많은 보호를 받았다는 실험이 있다. 그러나 너무 매워서 단번에 공격하기 어려운 경우 미생물은 먼저 부분적으로 고추를 썩게 만든 후 부패시키고, 그 다음에 공격해서 침략한다. 그러다 보면 고추입장에서는 더 강한 물질을 분비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원예육종학자들을 통해서, 혹은 자연적으로 주변 다른 식물체의 타가수분을 통해서 새로운 품종으로 변환되어 더 매운맛 성분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사진 2. 다양한 종류의 고추>

<사진 2. 다양한 종류의 고추>


   오늘날 고추는 전 세계적으로 약 4,000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항해시대의 상품 교역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후추를 뒤로 물러나게 하여 소금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향신료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오늘날 추운 지방과 더운 지방, 산악지대나 평지 어느 곳을 망라하고 번식이 가능한 것이 고추다. 그러다 보니 후추의 판매량의 5배나 더 많이 팔릴 정도로 세계인들이 즐기는 향신료의 위치에 도달하였다.     


    매운 음식을 찾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방법으로 매운맛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맛을 테스트하는 감각평가자들에게 매운 음식을 평가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다. 단맛이나 신맛 그리고 짠맛까지는 평가하는 과정이 오히려 즐거울 수가 있다. 왜냐하면 모두 즐기는 맛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쓴맛과 더불어 매운맛은 고통을 안겨준다. 그리고 많은 시료를 평가할 수가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 고통이 남을 수 있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1912년 윌버 스코빌은 스코빌 매움 단위(SHU, Scoville heat unit)를 제안하였다. 이는 주관적인 감각을 계량화하여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매운 맛을 가지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1 SHU는 매운맛이 나는 추출물을 물로 1,000,000배 희석하여 전혀 매운 맛을 못 느끼는 정도에 대한 상대적인 값이다. 오늘날 이것은 매운맛을 평가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기준이 되었지만 사실은 캡사이신 성분이 통증차단제의 진통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그 효과를 분석하다가 얻어진 결과다.


    고추가 매운지 아닌지 꼭 먹지 않은 채 코로 냄새만 맡아 보아도 대략 알 수 있다. 아주 매운 고추는 코 근처만 가져와도 금방 맵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최근에는 전자코를 이용하여 이런 매운맛의 상대적인 정도를 비교할 수가 있는데 매운맛 성분의 하나인 캡사이신을 HPLC와 같은 분석 장비를 통해 정량 분석한 결과와 유사한 정도를 보인다. 매운 맛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 개발에도 매우 유용한 분석 장비들이 맛 평가에 참가하는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림 1. 전자코를 통해서 매운 고추와 안 매운 고추를 일정비율로 혼합한 상대적인 맛 차이를 분석할 수 있다.><그림 1. 전자코를 통해서 매운 고추와 안 매운 고추를 일정비율로 혼합한 상대적인 맛 차이를 분석할 수 있다.>

 

<그림 2. 고추의 매운 맛을 전자코로 분석한 결과와 HPLC로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을 분석한 결과는 일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그림 2. 고추의 매운 맛을 전자코로 분석한 결과와 HPLC로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을 분석한 결과는 일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노봉수 교수  - 현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맛의 비밀’ 저자  - 식품 관련 저서 활동, 언론 기고, 학술 연구 등 한국 식품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동시에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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