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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한영신 교수의 ‘뇌 발달과 식사육아’] 아이가 먹기를 원하면 즐겁게 식사하라! 음식에 대한 감정의 기억이 더 강력히 더 오래간다

등록일
04.06
조회수
1120

나는 대학 1학년까지 고기를 먹지 않았다. 단지 고기만 안 먹었을 뿐 아니라 고기가 들어가 고기 맛을 내는 국물조차 먹지 않았다. 처음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쯤 시골에 가서 닭을 쫓으면서 하루 종일 마당을 뛰어놀며 놀았는데 그날 그 닭이 식탁으로 올라왔다. 아직도 그날 먹은 닭 국물 맛이 생각난다. 이전에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삼계탕이 그날은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닭뿐 아니라 모든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충격이 생각보다 컸는지 한참 커야할 성장기 10년 동안 고기가 역겨워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대학 어느 날 학교동아리 모임에서 돼지갈비를 먹을 일이 생겼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 대학 때는 돼지갈비는 비싸서 동아리 모임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그날은 이 비싼 먹을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는지 부모님들이 그렇게 권해도 먹지 않던 고기를 나 스스로 한 점 먹어 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을 수가! 내가 역겹다고 그렇게 안 먹었던 고기 맞나?’


<사진 1. 아이와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

<사진 1. 아이와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는 입이 아닌 뇌의 판단

 우리는 맛에 대해 ‘짜다, 달다, 시다, 쓰다, 맛있다, 맛없다, 좋아하는 맛이다, 싫어하는 맛이다’ 등 다양한 표현을 쓴다. ‘짜다, 달다, 시다, 쓰다’는 맛에 대한 팩트이고 ‘맛있다, 맛없다, 좋아하는 맛이다, 싫어하는 맛이다’는 맛에 대한 의견이 들어간 주관적인 표현이다. 맛을 느끼는 과정을 살펴보면 ① 입에 있는 맛 수용체에 각각에 해당되는 분자가 닿아 자극되고 ② 자극이 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면 ③ 뇌가 인지하여 비로소 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즉, 단순히 미뢰에서 일으키는 화학적 자극만이 아니라 본능과 경험의 영향을 받는 뇌에서의 판단이 내려진 후 비로소 맛에 대한 판단이 마무리 되는 것이다.  


<그림 1. 맛을 느끼는 과정>  미뢰(혀 - 쓴맛, 감칠맛, 단맛, 짠맛, 신맛) > 맛 수용체 (쓴맛분자, 아미노산, 당, 나트륨, 유기산) > 맛 인지 (뇌 신경세포)

<그림 1. 맛을 느끼는 과정>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떤 맛은 ‘맛있다’하고, 어떤 맛은 ‘맛없다’고 결정한다. 이러한 본능적인 구분은 다분히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에너지원인 당의 단맛을 좋아하고, 신경전달과 근육움직임 등에 중요한 전해질의 짠맛을 좋아하고, 인체구성 필요한 성분인 단백질의 감칠맛을 좋아한다. 인체를 죽게 할 수 있는 독의 쓴맛을 거부하고, 덜 익었거나 상했을 때 나는 신맛은 경계한다. 


  흥미로운 것은 맛에 대한 본능이 경험에 의해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커피는 국내에서 거의 열풍인 듯하다.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해야하고, 식사는 걸러도 아메리카노를 거르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커피가 써서 크림이나 설탕을 꼭 넣어야 했고 블랙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써서 먹지 못했던 아메리카노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사회가 국제화 되고 세련된 커피전문점이 생기면서 그곳에 가서 아메리카노 한잔 정도는 마셔주어야 시대를 따라가고 세련돼 보인다는 인식이 아메리카노가 대중화 되는데 큰 기여했다. 먹는다는 것은 그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함께 그때 먹는 감정을 함께 먹는 것이다. 감정이 즐거울 때 뇌는 본능의 맛 위에 새로운 판단을 올려놓는다. 


오감의 맛에 감정의 맛을 더하여 오랜 기억으로 남는 맛의 판단

  다시 어릴 적 삼계탕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맛있었던 음식이 역겹게 바뀔 수 있고 역겹던 음식이 한 순간에 맛있게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기존에 있던 음식에 대한 기억 위에 강한 감정의 맛이 얹혀 맛에 대한 강한 기억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결국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는 뇌가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판단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기억을 연구하는 뇌 과학자들은 감정이 기억에 강력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기억은 마치 퍼즐조작 같다고 이야기 한다. 음식을 먹으면서 감지하는 맛, 향, 촉감, 소리, 색, 모양 등의 느낌이 해마로 모여 퍼즐조작 맞춘 것처럼 한 세트가 되어 기억으로 저장된다. 이때 음식자체만이 아니라 먹었던 장소, 먹으면서 있었던 사건, 먹으면서 느꼈던 감정이 퍼즐조작의 한 부분으로 차지하며 기억으로 남는다. 과학자들은 강렬한 감정이 함께 저장된 기억이 오래 지속됨을 밝혀내어 기억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의 어릴 적 삼계탕에 대한 충격과 10년 넘게 고기를 먹지 못한 결과의 연결고리는 감정인 것이다. 

      

 

<그림 2.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감정이 해마로 모여 기억으로 저장되는 과정><그림 2.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감정이 해마로 모여 기억으로 저장되는 과정>


아이가 잘 먹게 하려면 음식에 대한 즐거운 감정을 만들어주자

  아이와의 식사시간이 즐거운가 한번 생각해보자. 아이가 작아서, 아이가 안 먹어서 많은 엄마들이 안타까워하고, 쫓아다니면서, 억지로 먹이는 경우가 많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억지로 먹여지는 음식이 싫고, 괴롭고, 화가 나는 대상일 것 같다. 음식에 나쁜 감정의 기억이 더해지는 순간이다. 안타깝게도 오래 가는 나쁜 기억을 만들어주는 순간이다. 그러나 매일 음식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아이가 안 먹을 때 웃으면서 기다려주거나 안 먹어도 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성남시 어린이 급식관리지원센터 어린이식생활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와 부모 이야기에서 답을 찾아보자. 엄마들이 주로 보이는 부모 교육에 열심히 듣고 있는 아빠가 눈에 띄었다. 아이가 먹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고 질문도 많았다. 아이의 특징에 대한 설명, 감정의 작용에 대한 설명 등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와 아이와 함께 읽어보고 그림으로 볼 수 도 있는 칼라푸드 동시(스토리메이커 제작)를 주고 다음을 예약하며 돌려보냈다. 한 달 후 상담시간에 찾아와 아빠와 엄마가 보여준 아이의 식사 동영상에는 즐겁게 식사하는 가족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먹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으니 아이의 모습이 보이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게 해주니 식사시간이 주도적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아빠는 아이가 권해주는 음식을 받아먹기도 하면서 어느 누구하나 힘들지 않고 즐겁더라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칼라푸드 동시 중에 있었던 콩나물 군대 동시를 너무 좋아하여 매일 시를 읽고, 그림을 보고 하더니 그렇게 안 먹던 콩나물만 찾더라하고 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이 아이 하나만의 특별한 신기한 결과일까?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식사 전 5분간 식품을 소재로 쓰여 진 동시를 읽으며 활동하고 나서 급식을 하였더니 안 먹 던 채소를 먹었다는 연구 결과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어른들이 깨달아야한다. 먹는 문제를 먹는 것으로, 영양으로 직접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아이들의 방식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뇌에 즐거운 감정이 더해서 오래도록 즐거운 맛으로 남게 된다. 

  

  이제 한번 돌아보자. 부모의 방식대로 아이를 끌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시작해보자. 아이 방식으로 아이와 같이 가는 방법을.






 

한영신 교수 - 현) ㈜뉴트리아이 대표, 전)삼성서울병원 소아영양 전문연구원 , 전)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연구교수  - ‘식품알레르기’와 ‘아토피피부염’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 활동과 함께 방송 프로그램에 전문가로 참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안먹는 아이 잘먹는 아이>, <내아이의 전쟁 알레르기>, <알레르기의 올바른 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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