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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음식을 말하다. 개성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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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03.12
조회
199

북한 음식을 말하다. 개성음식


지난 해 가장 주목받았던 음식은 단연 평양냉면이었다. 아마도 남북정상회담의 영향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한 간 화해무드의 중요한 키워드가 다름 아닌 음식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다. 음식만큼 민족을 단단히 연결시켜 주는 고리가 있겠는가? 먹방과 쿡방의 시대여서인지 북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오히려 북한음식을 먹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음식은 생존을 위한 먹거리 단계를 지나 음식스토리텔링이 더 매력적인 미식의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식당 앞에 줄을 서는 인기를 몰고 온, 대중적인 기호를 강력히 드러낸 평양냉면 외에도 북한 태생의 음식은 너무 많다. 북한음식은 북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회정치적 의미를 드러내주는 강력한 메타포(은유)로 작용하고 있다. 한식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북한 음식은 거쳐야할 필수 코스다. 앞으로 주로 음식을 사랑하는 이들이 즐겨 본다는 이 칼럼을 통해 북한음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북한음식은 넓고, 그 종류도 많고 깊이도 대단하다, 따라서 먼저 고려시대의 수도이면서 어느 지역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음식문화를 자랑하는 개성음식들을 먼저 만나보려고 한다.  



1. 개성 만두, 편수


만두는 인류 보편의 음식이라 할만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음식이 바로 이 만두이다. 중국의 딤섬은 말 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아르메니아의 토픽, 시베리아의 펠메니, 그리고 페르시아의 요시파라,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에서 즐기는 피에로기나   터키의 만티 등등 대부분의 북반구에 위치한 국가에서 즐기고 있는 음식이 만두이다. 오래 전(2008년 4월 18일)에 미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르 2세 만찬상으로 차려진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라비올리였는데 이는 페코리노 치즈로 채운 이탈리아 만두였다. 이 만찬을 차린 바스티아니치는 이탈리아계 이민 1.5세로 식단 속에 나이 든 교황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고향의 추억’이라는 컨셉으로 음식을 차렸다고 한다. 만두는 나눔과 사랑의 음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까지도 한국에서 만두는 오랫동안 북쪽 지역에서만 즐기는 음식이었다. 설에도 북쪽에서는 만둣국을 주로 먹고 남쪽에서는 떡국을 주로 먹었다. 만두의 재료가 되는 메밀이나 밀이 주로 북쪽에서 잘 재배되는 반면 떡국의 재료인 쌀은 주로 남쪽에서 재배가 잘 되는 탓이었다. 그러나 이제 만두는 전 국민이 사랑하는 국민음식이 된 듯하다. 만두가 외식업의 중심메뉴가 되었고, 또한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냉동만두를 비롯한 다양한 만두가공식품이 개발되어 팔리고 있다. 


<다양한 모양의 만두>

<다양한 모양의 만두>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만두를 먹어왔을까? 만두의 종류와 형태가 워낙 다양해 그 정확한 기원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만두는 기록상으로는 고려시대이후 고려가요인 ‘쌍화점’에서부터 한국인의 중요한 음식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각종 조리서에 그 요리법이 나오고, 또 조선 왕조의 의궤음식의 하나로 중요하게 기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두는 조선시대 이후 발간된 요리책에 주로 나오는데 이러한 만두의 종류는 무려 78여종에 이른다. 1670년의 <음식디미방>에서, 1957년 <이조궁정요리통고> 에 이르기까지 문헌들에 수록된 만두는 모두 78종에 이른다. 이를 종류별로 분류하여 보면 가루반죽을 만두피로 이용한 만두가 18종, 육류를 이용한 만두가 8종, 생선을 이용한 만두가 20종, 편수가 17종, 그리고 호두만두, 지진만두, 보만두 등 기타만두가 15종이었다. 밀만두, 메밀만두, 어만두, 생치만두는 대부분의 문헌에 수록되어 있었으며 변시만두는 1815년 이후부터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굴이나 전복을 이용한 만두는 1800년대에만 소개된 반면 준치만두는 1939년 처음 소개되기 시작하여 1957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특징적인 만두로 지진 만두, 감자만두, 보만두가 1943년, 두부만두가 1952년, 규아상, 동아만두가 1957년에 소개되었다. 1854년에 소개된 건치만두, 제육만두, 전복만두, 준시만두, 호두만두는 명칭은 만두로 되어 있으나 일반 만두와 만드는 방법이자 재료 면에서 차이가 있으며 안주나 육포의 일종인 포 쌈으로 사용되었다. 

      

세계 다른 나라보다 우리의 만두문화가 더 발달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대개 밀가루나 호밀가루 등 곡물재료를 만두피로 이용해 만두를 만들었던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생선(어만두), 채소류(동아만두) 등 다양한 재료를 만두피로 사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만두 음식을 창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의 요리 발달의 독창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리고 만두는 조선시대에 중요한 궁중음식이었는데 각 의궤에는 다음과 같이 등장하고 있다. 1719년의 <의궤>에는 만두(饅頭), 골(骨)만두, 어(魚)만두, 동과(冬果)만두가 나오고, 1795년 <의궤>에는 천엽(千葉)만두, 생복(生鰒)만두, 수어(秀魚)만두, 진계(陳鷄)만두, 황육(黃肉)만두, 양(羊)만두, 1827년의 <의궤>에는 생치(生雉)만두, 생합(生蛤)만두, 육(肉)만두가 등장한다.


  그런데 고려시대에는 만두 조리법이 나오는 조리서는 없지만 고려시대부터 개성에서 만두는 특히 중요한 음식이었다. 고려 시대의 충렬왕 5년(1279년)에 오잠이 지은 고려가요인 ‘쌍화점(雙花店)’에 상화, 즉 만두가 나온다. “내가 상화 집에 상화를 사러 갔더니 회회(回回)아비가 내 손목을 잡았어요.”로 시작된다. 상화는 밀가루에 술을 넣어 부풀린 반죽을 만들고 안에 채소나 팥소를 넣고 찐 음식인 중국의 만토우(饅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회회는 위구르족의 한자이름이며 당시에 위구르인들이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 들어와 상화가게를 열고 장사를 하였다고 하니 개성 사람들이 이를 즐겨 먹었을 것이다,  


그러니 북한 지역에서 만두가 시작되었으며 고려시대에 만두가 있었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시대 수도인 개성에서 만두의 유래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현재 만두는 북한의 평양 대만두와 개성만두가 유명하다. 그런데 개성만두도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만두인 메밀만두도 있지만, 아주 독특한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편수라는 것이 있다. 어쨌든 개성에서는 겨울철에는 만두를 즐겨 먹었고 여름철에는 편수를 만들어 먹었다. 특히 개성만두로 유명한 것은 바로 편수라는 이름의 만두이다. 바로 이 편수 이야기를 한 번 해 보자.  


<만두를 빚는 모습(왼쪽), 개성만두 편수(오른쪽)>

<만두를 빚는 모습(왼쪽), 개성만두 편수(오른쪽)>


먼저, 편수에 대한 기록을 찾다보니 한 개성인의 구술에서 “만두라는 이름이 낯설었고 상민들이 먹는 먹거리로 생각하였다.”고 전한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수를 먹었다. 편수는 개성을 빼고는 대중적인 음식이 아니었고 다른 지방에서는 특별한 연회석상이나 잔칫상에서나 가끔씩 볼 수 있는 음식이고 서민음식점에서는 편수라는 이름 자체를 모른다”고 하였으니 편수는 개성의 유명한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 편수는 밀가루 반죽한 것을 얇게 밀어 그 속에 채소와 고기를 소를 넣고 네 귀를 서로 맞붙여 찌거나 끓는 물에 익혀 차갑게 하여 초장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이 개성편수 속에 넣는 소로는 여름철에 나는 풋풋한 여린 호박을 채 썰어 소금물로 살짝 데쳐 물기 없이 꼭 짜서 나물로 무친 것과 삶은 녹두나물과 볶은 쇠고기를 양념해서 넣는데 쇠고기로 소를 넣을 때는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돼지고기로 소를 만들 때에는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다. 반죽한 밀가루를 한 시간 쯤 두었다가 편수 피를 밀 때에는 되도록 얇게 미는 것이 비결이며 만두와 달리 두부는 넣지 않는다. 편수 소를 부드럽게 하려면 애호박나물을 제외한 모든 재료는 적당히 물기가 있게 짜야하며 너무 짜면 소로 넣은 배추나 숙주나물이 섬유질만 남아 질기고 팍팍해서 편수의 부드러운 감촉을 잃게 된다,


오래 전 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별건곤>잡지 1929년 12월 1일자에는 진학포라는 사람이 쓴  ‘천하진미 개성의 편수’란 제목의 재미있는 글이 나온다. 이를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개성 편수 중에도 빈한한 집에서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편수 먹는다는 기분만 맛보는 것 같은 그런 편수는 서울 종로통 음식점에서 일금 20전에 큰 대접으로 하나씩 주는 만두 맛만 못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고기라고는 거의 없고, 숙주와 두부의 혼합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남들이 일컬어 주는 개성 편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 편수 속의 구성물은 우육·돈육·계육·생굴·잣·버섯·숙주나물·두부 그 외의 양념 등 이렇게 여러 가지 종류이다. 이것들을 적당한 분량씩 배합하여 넣되 맛있는 것을 만들려면 적어도 숙주와 두부의 합친 분량이 전체 분량의 3분의 1을 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으로 정말 맛있다는 개성편수는 그리 염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어서 말하기를 “여러 가지 물건이 개성 부인네의 특수한 조미 법으로 잘 조미되어 알맞게 익어서 그것이 우리들 입 속으로 들어갈 때 그 맛이 과연 어떠할까. 세 가지 고기 맛, 굴과 잣 맛, 숙주와 두부 맛들이 따로따로 나는 것이 아니요, 그 여러 가지가 잘 조화되어서 그 여러 가지 맛 중에서 좋은 부분만이 한데 합쳐져서 새로운 맛을 이루어서 우리 목구멍으로 녹아 넘어가는 것이니 그 새로운 조화된 맛 그것이 개성편수 맛이다.”라고 예찬했다. 


그런데 편수의 조리법은 이보다 더 전인 1890년대에 쓰인 한글 필사본 조리서 <시의전서>에 나온다. 이에 따르면 “일명 편수라 한다. 밀가루를 냉수에 반죽하여 얇게 밀고 네모반듯하게 자르되 작지 않게 자른다. 소는 만두소처럼 만들어 넣고 4귀를 한데 모아 네모반듯하게 잘 붙여 빚는다. 삶는 것은 만두처럼 한다.”고 했다. 여기서 편수 소는 같은 책에 나오는 ‘만두’ 소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소감으로는 쇠고기·꿩고기·돼지고기·닭고기를 모두 쓴다. 미나리·숙주·무는 다 삶고 두부와 배추김치는 다지고, 고기도 다진다. 다진 채소와 두부·닭고기에 파·생강·마늘·고춧가루·깨소금·기름을 넣어 간을 맞추어 양념한다. 기름을 많이 넣고 속에 잣을 두어 개씩 넣어서 아주 얇게 빚어 고기 장국에 삶는다. 만두는 물이 팔팔 끓을 때 넣어 솥뚜껑을 덮지 않고 삶는데, 만두가 둥둥 뜨거든 건져 그릇에 담아 후춧가루를 뿌린다.”고 하였다. 즉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꿩고기가 다 쓰이고 채소와 잣까지 넣어 만드는 고급음식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의전서>의 저자는 편수와 만두는 그 소나 삶는 방법에서는 다를 바가 없지만, 다만 편수의 모양이 네모반듯한 데 차이가 있다고 본 듯하다. 하지만 앞서 진학포가 소개한 개성편수에 들어가는 소는 <시의전서>의 만두와는 약간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대표적인 근대 조리서로 1924년에 발행된 조선에 둘도 없는 하나뿐인 최신 조리서라는 이름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편수(水角兒 瓜), 수각아(水角兒), 과연두(瓜緣兜)’ 가 나온다, 이에 따르며 “편수는 여름에 만들어 먹는다. 다른 만두와 같이 만들되 빚는 모양을 네모지고 납작하게도 하고 둥글게 봇짐처럼 하기도 한다. 송도에서 많이 만든다. 유월 유두에 만들어 먹는 것은 누런 오이를 껍질과 씨를 빼고 실같이 가늘게 썰어 놓은 다음 소고기, 표고, 석이, 파 밑동 등을 모두 다 잘게 이겨 오이 썬 것과 함께 장과 기름을 치고 주무른다. 밀가루 반죽한 것을 얇게 밀고 주물러 만들어 놓은 소를 넣고 만두처럼 빚은 다음 틀에 찌고 참기름을 바르고 잣가루를 뿌려 초장에 찍어 먹는다.”고 하였다. 여기서 분명하게 편수는 송도에서 많이 만들어 먹는다고 못 박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2008년 북한의 근로단체출판사에서 발행한 <우리 민족료리>에서도 편수를 개성음식으로 소개하였다. 


편수는 한자로 ‘片水’라고 적는데 이 이름은 물에 삶아 건져낸 것이라는 뜻에서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보통 물 위에 조각이 떠 있는 모양이라고 하여 이런 한자 이름이 생겨난 듯하다, 하지만 1870년쯤 쓰인 책으로 알려진 황필수의 <명물기략>에서는 편식(편食)을 편수로 잘못 읽어서 생긴 이름이라 보았다. 편식은 중국 명나라 때의 유약우(1541~?)의 <작중지>에서도 음력 정월 초하룻날 끓는 물에 익힌 교자인 편식을 먹는다고 나온다. 명나라 사람들은 지금의 중국음식인 수교자를 편식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조선시대 개성상인들은 지금의 베이징인 연경으로 조선 사신들이 떠날 때 인삼을 가지고 가서 장사를 했으며 이 때 수교자인 편식을 알았던 듯하다. 이의 영향으로 19세기가 되면 개성의 독특한 음식으로 보자기로 소를 싼 모양의 편수가 생겨난 것 같다. 이름도 편수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편수는 조선시대 개성상인이 중국 연경과 무역을 할 때 들여온 만두의 일종인 편식이 변형된 음식으로 볼 수 있다. 이의 배경에는 특히 황해도에서는 품종이 좋은 밀을 재배해 얻은 밀가루가 있었기 때문이고 이를 이용해 편수피를 만들었다. 

 

예전부터 편수의 재료가 되는 밀은 특히 황해도에서 그 생산량이 가장 많았고 품종도 좋았다. 따라서 개성 사람들은 밀가루 피로 편수를 만들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도 개성의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두부와 숙주만으로 소를 만들어서 비교적 풍부한 밀가루로 만든 피로 보쌈김치 싸듯이 편수를 만들었을 듯싶다. 반면 개성의 부자들은 이와는 차별화하여 온갖 고기와 생굴까지 넣은 소로 자신들만의 개성편수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20세기이후 보다 대중적인 만두는 한국의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고 주로 개성 부자들이 만들어 먹었던 개성 편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음식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남한에서 개성편수는 개성 출신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명맥을 유지해 왔다. 앞서 소개한 개성편수 예찬론자 진학포는 “개성의 유명한 송순주(松筍酒) 한 잔을 마시고 이름 있는 보쌈김치와 함께 이렇게 잘 조화된 편수 한 개를 곁들일 때 나 같은 식도락의 미각은 부지경에 이 몸을 황홀경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편수는 고려시대로부터 개성에 전해지는 만두의 일종으로 볼 수 있고 변화하고 세련화의 과정을 밟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보인다. 개성 명물, 편수는 여름에 차갑게 해서 먹는 음식이었다. 소의 식감을 만끽하기 위해서 보통 초장에 찍어 먹었다. 개성편수는 다른 만두와는 비교가 안 되는 최고의 만두음식이라고 생각된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세련된 개성음식으로 한 여름철 차갑게 해서 입맛을 돋우어주던 개성 편수가 평양냉면 못지않게 입맛을 다시게 한다. 







정혜경 교수  -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채소의 인문학’ 저자  - 한국식생활문화학회 회장과 대한가정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의 식품산업진흥 심의위원과 한식 자문위원으로 있으면서 우리 음식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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